[왜냐면] 수능? 어떤 시험에도 ‘인생이 걸려서’는 안 된다
연혜원 (투명가방끈 활동가)
11월 어느 날에는 상당수 방송과 라디오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인사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게 의례처럼 된지 오래다. 인사의 힘은 크다.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말이 한국인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처럼, 인사는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가리킬 때가 많다. 11월의 인사가 수능 수험생들의 몫인 만큼,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중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인사는 “밥은 드셨어요?”만큼 자연스러운 의례적 질문이 된 지 오래다.
살면서 만난 수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수능에 너희 인생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이들 모두가 가진 트라우마틱한 기억이다. 어떤 시험에도 ‘인생이 걸려서는’ 안되고, 인생을 걸게 해서도 안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수능 시험 뒤엔 시험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그때마다 학교가 공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나라 교육시스템이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는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란 경력이 훈장처럼 언급되지만,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지방대 출신이란 게 논란이 된다. 사업가이자 유명 유튜버라는 강성태는 서른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방송에서 본인 수능 성적을 자랑한다. 그런 한편 대학생들은 집회 소음이 자신들의 학습권을 방해한다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을 고소하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인다. 이게 한국 사회고, 이 사회 상당수 구성원은 앞서 언급한 내용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그 속에서 11월이면 수험생들에게 ‘힘내라’, ‘좋은 성적 거두고 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건 당연한 일일까, 다소 괴기스러운 일일까.
수능이 끝나면 기업들은 물론 문화예술계에서도 ‘수험표 할인’을 내세우며 수험생들을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수험표 할인’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뭘까. 수능을 본 이들에게만 금전적 혜택을 제공한다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자본주의를 학습시키는 계기이자 과정인 건가. ‘수험표 할인’은 수능을 보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가시화한다.
이렇게 수능을 보지 않는 사람들을 지우는 사회에서, 입시경쟁교육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는 단체인 투명가방끈은 수능 날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축복하는 작은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주를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으로 선포하고 관련 캠페인을 진행한다. 첫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 슬로건은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이다. 이를 통해 의례화된 11월의 인사를 바꾸고, 나아가 수능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한다. 교육을 대학 입시의 굴레에서 구하고, 대학이 아니어도 친구와 동료, 연대자를 만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외쳐본다.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
링크: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67582.html
[왜냐면] 수능? 어떤 시험에도 ‘인생이 걸려서’는 안 된다
연혜원 (투명가방끈 활동가)
11월 어느 날에는 상당수 방송과 라디오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인사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게 의례처럼 된지 오래다. 인사의 힘은 크다.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말이 한국인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처럼, 인사는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가리킬 때가 많다. 11월의 인사가 수능 수험생들의 몫인 만큼,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중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인사는 “밥은 드셨어요?”만큼 자연스러운 의례적 질문이 된 지 오래다.
살면서 만난 수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수능에 너희 인생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이들 모두가 가진 트라우마틱한 기억이다. 어떤 시험에도 ‘인생이 걸려서는’ 안되고, 인생을 걸게 해서도 안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수능 시험 뒤엔 시험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그때마다 학교가 공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나라 교육시스템이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는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란 경력이 훈장처럼 언급되지만,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지방대 출신이란 게 논란이 된다. 사업가이자 유명 유튜버라는 강성태는 서른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방송에서 본인 수능 성적을 자랑한다. 그런 한편 대학생들은 집회 소음이 자신들의 학습권을 방해한다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을 고소하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인다. 이게 한국 사회고, 이 사회 상당수 구성원은 앞서 언급한 내용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그 속에서 11월이면 수험생들에게 ‘힘내라’, ‘좋은 성적 거두고 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건 당연한 일일까, 다소 괴기스러운 일일까.
수능이 끝나면 기업들은 물론 문화예술계에서도 ‘수험표 할인’을 내세우며 수험생들을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수험표 할인’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뭘까. 수능을 본 이들에게만 금전적 혜택을 제공한다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자본주의를 학습시키는 계기이자 과정인 건가. ‘수험표 할인’은 수능을 보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가시화한다.
이렇게 수능을 보지 않는 사람들을 지우는 사회에서, 입시경쟁교육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는 단체인 투명가방끈은 수능 날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축복하는 작은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주를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으로 선포하고 관련 캠페인을 진행한다. 첫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 슬로건은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이다. 이를 통해 의례화된 11월의 인사를 바꾸고, 나아가 수능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한다. 교육을 대학 입시의 굴레에서 구하고, 대학이 아니어도 친구와 동료, 연대자를 만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외쳐본다.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
링크: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675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