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실패
송김경화 (연극 하는 사람)
2021년의 일입니다. 좋아하는 동료들과 오랜만에 함께 공연을 올렸어요. 먹고 사느라 아이 키우느라 꽤 흩어져 있 었거든요. 함께 사는 어린이들도 다 함께 연극을 하자. 그렇게 꼬득여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2020년에 올릴 계획 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1년을 더 기다렸어요. 3년만에 올리는 신작인데다 연습을 하려고 매일 천안에서 기차를 타는 동료와 어린이의 결심까지 있었으니 모두가 마음을 많이 쏟았습니다. 공연시간만 110분. 4명의 아동청소년 배우가 이끌고, 5명의 비아동청소년 배우가 조력하는 무대를 만들었어요. 6살, 7살, 8살 어린이 4명이 연기만 하 는 게 아니라 관객의 눈을 바로 보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말합니다. 그럼 비아동관객은 의자 뒤로 숨고 싶어지는 거에요. 많이 사랑 받았어요. 코로나로 객석이 겨우 3-40석 밖에 안됐어요. 재공연을 하고 싶어지잖아요. 평소라 면 넣지 않을 민간 극장의 대관 지원 사업에 신청을 했어요. 인터뷰 심사를 하고 나왔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더라 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같이 간 동료도 그렇게 느꼈다면 뭔가 잘못됐다. 되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선정이 됐다고 전화가 왔어요.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했어요. 내 마음이 이만저만하다. ‘아니 야. 경화야. 이건 해야해. 너가 좀 참아봐.’ 라고 말하는 동료가 세상에 한 명도 없었어요. 다들 좋은 극장에 서고 싶 었을텐데. ‘너가 하고 싶은데로 해.’ 라고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죄송하지만 이 공연이 어려울 것 같다고. 최대한 정중하게요. 그이도 정중하게 답했습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는 동료가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당신은 이미 현장에서 많은 작업을 했는데, 왜 굳이 대학원에 들어갔냐고 물었어요. 연출한 작품이 많은데 사람들이 자기를 배우로만 보고 연출로 생각 혹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더라는 거예요. 의아해하는 제 얼굴을 보고 그이가 덧붙혔어요. ‘소위 잘되는 사람이 가는 길’이 보이더라 고요. 어떤 수순 혹은 단계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제가 의아했던 것은, 아니 사실 좀 충격이었던 건, 그 동료가 ‘소위 잘되는 길’을 선택할만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말이 툭 나오더라고요. “나 게으른가봐. 다들 뭘 열 심히 하네.” 나 빼고 다 어딘가를 향해 뛰고 있구나. 나의 실패란 당연하다. 뭐 그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이 세상에 게으른 엄마는 없어.“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하는가. 이 질문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연극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성공한 연 극인이 목표가 아닌 이상 말이에요. OTT를 포함해서 대중 매체에서 너무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런 시대에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랜만에 대학로에 친구 공연을 보러갔는데 그 공연을 보러 온 연극인들이 다 절 보고 오랜만이다 뭐하고 지냈어 라 고 하더라고요. 나 계속 공연했는데. 저 정말 바빴거든요. 네. 전 실패했습니다. 저의 실패는 이런 실패입니다. 이 세 계와 저 세계를 잇는 실패. 이 실패는 연대. 그러니까 연극.
앞서 말한 그 작품 대체 뭐냐 궁금하시죠?
기획의도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능력주의와 불평등에 대하여
- 계급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존엄이 획득되는 사회. 삶의 불평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 걸 까. 연극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는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이 온 몸으로 겪는 불평등의 굴레를 들여다봄 으로서 능력주의와 불평등이 어떤 방식으로 아동의 인권을 짓밟고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며 정당화 하고 있는지 당사자인 아이들의 몸과 말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전히 실패 일 수 밖에 없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저는, 희곡 쓰고 연출 하고 가끔 연기를 하는 송 김경화입니다.
이런 실패
송김경화 (연극 하는 사람)
2021년의 일입니다. 좋아하는 동료들과 오랜만에 함께 공연을 올렸어요. 먹고 사느라 아이 키우느라 꽤 흩어져 있 었거든요. 함께 사는 어린이들도 다 함께 연극을 하자. 그렇게 꼬득여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2020년에 올릴 계획 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1년을 더 기다렸어요. 3년만에 올리는 신작인데다 연습을 하려고 매일 천안에서 기차를 타는 동료와 어린이의 결심까지 있었으니 모두가 마음을 많이 쏟았습니다. 공연시간만 110분. 4명의 아동청소년 배우가 이끌고, 5명의 비아동청소년 배우가 조력하는 무대를 만들었어요. 6살, 7살, 8살 어린이 4명이 연기만 하 는 게 아니라 관객의 눈을 바로 보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말합니다. 그럼 비아동관객은 의자 뒤로 숨고 싶어지는 거에요. 많이 사랑 받았어요. 코로나로 객석이 겨우 3-40석 밖에 안됐어요. 재공연을 하고 싶어지잖아요. 평소라 면 넣지 않을 민간 극장의 대관 지원 사업에 신청을 했어요. 인터뷰 심사를 하고 나왔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더라 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같이 간 동료도 그렇게 느꼈다면 뭔가 잘못됐다. 되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선정이 됐다고 전화가 왔어요.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했어요. 내 마음이 이만저만하다. ‘아니 야. 경화야. 이건 해야해. 너가 좀 참아봐.’ 라고 말하는 동료가 세상에 한 명도 없었어요. 다들 좋은 극장에 서고 싶 었을텐데. ‘너가 하고 싶은데로 해.’ 라고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죄송하지만 이 공연이 어려울 것 같다고. 최대한 정중하게요. 그이도 정중하게 답했습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는 동료가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당신은 이미 현장에서 많은 작업을 했는데, 왜 굳이 대학원에 들어갔냐고 물었어요. 연출한 작품이 많은데 사람들이 자기를 배우로만 보고 연출로 생각 혹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더라는 거예요. 의아해하는 제 얼굴을 보고 그이가 덧붙혔어요. ‘소위 잘되는 사람이 가는 길’이 보이더라 고요. 어떤 수순 혹은 단계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제가 의아했던 것은, 아니 사실 좀 충격이었던 건, 그 동료가 ‘소위 잘되는 길’을 선택할만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말이 툭 나오더라고요. “나 게으른가봐. 다들 뭘 열 심히 하네.” 나 빼고 다 어딘가를 향해 뛰고 있구나. 나의 실패란 당연하다. 뭐 그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이 세상에 게으른 엄마는 없어.“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하는가. 이 질문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연극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성공한 연 극인이 목표가 아닌 이상 말이에요. OTT를 포함해서 대중 매체에서 너무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런 시대에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랜만에 대학로에 친구 공연을 보러갔는데 그 공연을 보러 온 연극인들이 다 절 보고 오랜만이다 뭐하고 지냈어 라 고 하더라고요. 나 계속 공연했는데. 저 정말 바빴거든요. 네. 전 실패했습니다. 저의 실패는 이런 실패입니다. 이 세 계와 저 세계를 잇는 실패. 이 실패는 연대. 그러니까 연극.
앞서 말한 그 작품 대체 뭐냐 궁금하시죠?
기획의도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능력주의와 불평등에 대하여
- 계급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존엄이 획득되는 사회. 삶의 불평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 걸 까. 연극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는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이 온 몸으로 겪는 불평등의 굴레를 들여다봄 으로서 능력주의와 불평등이 어떤 방식으로 아동의 인권을 짓밟고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며 정당화 하고 있는지 당사자인 아이들의 몸과 말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전히 실패 일 수 밖에 없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저는, 희곡 쓰고 연출 하고 가끔 연기를 하는 송 김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