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걸려 있는 학력·학벌주의
공현(투명가방끈 활동가)
병원에 갔을 때 벽면에 커다랗게 대학교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저 길을 걷다가도 창문이나 입구 등에 크게 대학 로고를 넣은 병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을 볼 때면 나는 마음이 착잡하다. ‘저건 아마 의사가 자기가 저 대학을 나왔다고 걸어 놓은 거겠지? 그런데 의사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뭐가 중요하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다는 게(혹은 대학 입시를 잘 치렀다는 게) 그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거기다 유독 서울대, 연세대 같은 대학들만 많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나중에 찾아보니 그 대학을 다닌 게 아님에도 그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고 대학 이름과 로고를 걸어 놓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연세 ○○의원’인데 연세대 출신 의사가 없다? 알고 보니…〉, 《헬스조선》, 2023년 10월 6일) 이런 사례는 대졸 학력보다는 의사 경력을 표시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인 건가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사회에서 대학 로고는 근무 경력보다는 학력·학벌로 읽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음을 떠올려 보면 여러모로 우습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동네 병원마다 있는 유명 대학 로고가 박혀 있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대학 서열과 학력·학벌주의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사례다.
이런 행태가 학력·학벌주의를 드러내고 조장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그간 제법 많지 않았을까 싶어 뉴스를 검색해 봤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려는 마케팅’이라는 분석과 평가 같은 것만 눈에 띄었다. 의사의 학력이 왜 환자에게 신뢰감의 근거가 될까? 만약 그런 현상이 있다 해도 이건 비판받고 억제돼야 하지 않나? 학력만을 근거로 어떤 이가 더 뛰어날 거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학력 차별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활발한 논의는 엉뚱하게도 ‘상표권’ 이야기였다. 대학의 로고를 그 대학 졸업한 의사 등이 쓰는 것이 상표권 침해냐는 논의이다. 어느 대학은 상표 관리 차원에서 해당 대학 졸업생의 신청을 받아 사용을 허가해 주고 사용료를 받는다고 한다. 대학 간판을 팔아 돈을 버는 이런 행태는 교육적인가, 아닌가? 학력 차별에 의해 가치가 생기는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니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 같은데 대학들도, 우리 사회도 너무 거리낌이 없다.
평소에도 눈에 띄던 병원의 대학 로고가 새삼스레 떠오른 것은 최근 몇 년간 의사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내놓은 말들 때문이었다. 물론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계획 없이 의대 정원 확대만 강행하는 윤석열 정부의 지금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의사단체나 의사 집단이 내비치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너무나 학력 차별적이고 능력주의적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4년 전 ‘전교 1등 의사’를 강조하며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했던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의 홍보물이나 올해 TV에 나와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 국민들도 원치 않는다”라던 경기도의사회장의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 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견해에 (적어도 윤석열 정부보다는) 귀 기울일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모습을 접하면 의사단체의 입장이 학력·학벌주의나 능력주의 등 차별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기반한 것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학력·학벌주의적 막말과 병원마다 대학 로고를 걸어 놓는 모습 사이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전교 1등 의사 운운하는 말들은 사실 한국 사회 전반의(의료계가 조금 더 심한 건 맞는 것 같지만) 학력·학벌 차별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서울대 로고를 걸어 놓는 것이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병원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믿는 이상, 우리는 그런 말들을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듣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전교 1등 의사에게 진단받을래, 성적 한참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한테 진료받을래?’ 하는 홍보물이든, 병원 입구에 대학 로고를 걸어 놓는 모습이든 모두 구시대적이고 차별적이라고 비웃음당하고 손가락질받는 세상을 꿈꾼다.
병원에 걸려 있는 학력·학벌주의
공현(투명가방끈 활동가)
병원에 갔을 때 벽면에 커다랗게 대학교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저 길을 걷다가도 창문이나 입구 등에 크게 대학 로고를 넣은 병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을 볼 때면 나는 마음이 착잡하다. ‘저건 아마 의사가 자기가 저 대학을 나왔다고 걸어 놓은 거겠지? 그런데 의사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뭐가 중요하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다는 게(혹은 대학 입시를 잘 치렀다는 게) 그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거기다 유독 서울대, 연세대 같은 대학들만 많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나중에 찾아보니 그 대학을 다닌 게 아님에도 그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고 대학 이름과 로고를 걸어 놓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연세 ○○의원’인데 연세대 출신 의사가 없다? 알고 보니…〉, 《헬스조선》, 2023년 10월 6일) 이런 사례는 대졸 학력보다는 의사 경력을 표시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인 건가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사회에서 대학 로고는 근무 경력보다는 학력·학벌로 읽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음을 떠올려 보면 여러모로 우습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동네 병원마다 있는 유명 대학 로고가 박혀 있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대학 서열과 학력·학벌주의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사례다.
이런 행태가 학력·학벌주의를 드러내고 조장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그간 제법 많지 않았을까 싶어 뉴스를 검색해 봤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려는 마케팅’이라는 분석과 평가 같은 것만 눈에 띄었다. 의사의 학력이 왜 환자에게 신뢰감의 근거가 될까? 만약 그런 현상이 있다 해도 이건 비판받고 억제돼야 하지 않나? 학력만을 근거로 어떤 이가 더 뛰어날 거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학력 차별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활발한 논의는 엉뚱하게도 ‘상표권’ 이야기였다. 대학의 로고를 그 대학 졸업한 의사 등이 쓰는 것이 상표권 침해냐는 논의이다. 어느 대학은 상표 관리 차원에서 해당 대학 졸업생의 신청을 받아 사용을 허가해 주고 사용료를 받는다고 한다. 대학 간판을 팔아 돈을 버는 이런 행태는 교육적인가, 아닌가? 학력 차별에 의해 가치가 생기는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니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 같은데 대학들도, 우리 사회도 너무 거리낌이 없다.
평소에도 눈에 띄던 병원의 대학 로고가 새삼스레 떠오른 것은 최근 몇 년간 의사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내놓은 말들 때문이었다. 물론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계획 없이 의대 정원 확대만 강행하는 윤석열 정부의 지금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의사단체나 의사 집단이 내비치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너무나 학력 차별적이고 능력주의적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4년 전 ‘전교 1등 의사’를 강조하며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했던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의 홍보물이나 올해 TV에 나와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 국민들도 원치 않는다”라던 경기도의사회장의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 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견해에 (적어도 윤석열 정부보다는) 귀 기울일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모습을 접하면 의사단체의 입장이 학력·학벌주의나 능력주의 등 차별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기반한 것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학력·학벌주의적 막말과 병원마다 대학 로고를 걸어 놓는 모습 사이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전교 1등 의사 운운하는 말들은 사실 한국 사회 전반의(의료계가 조금 더 심한 건 맞는 것 같지만) 학력·학벌 차별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서울대 로고를 걸어 놓는 것이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병원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믿는 이상, 우리는 그런 말들을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듣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전교 1등 의사에게 진단받을래, 성적 한참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한테 진료받을래?’ 하는 홍보물이든, 병원 입구에 대학 로고를 걸어 놓는 모습이든 모두 구시대적이고 차별적이라고 비웃음당하고 손가락질받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