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가 화장실을 쓰듯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겠습니다
한성 (노동·정치·사람,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안녕하세요. 노동·정치·사람과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함께 준비하는, 학교 밖 성소수자를 위한 검정고시 교실 ‘무지개교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느 날, 대학교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신 날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사랑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교수님께서 그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한성 학생, 학교 생활은 어때요? 화장실 쓰는거 힘들진 않아요?” 물론 누가 봐도 성별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저를 사려깊게 걱정하는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양심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교 남자화장실 쓰는게 힘들던 때는 처음 캠퍼스를 갔던 당일 말고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두번 자퇴하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학 다니는데 돈 아까워서라도 화장실 잘 쓰는게 맞으니까요. 저를 걱정해서일까요? 이런 마음을 갖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저를, 꼭 남학우 분들께선 아주 놀란,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랍니다. 처음엔 그 걱정이 미안해 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걱정에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긋이 쳐다봐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제 의사를 잘 알았다는 듯이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를 내시며 화답하시더랍니다. 저는 거기서 사실 보람과 재미를 많이 느낍니다.
흔히들,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벼랑 끝에 몰린 실패자,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 학교와 집과 등등의 공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화장실도 못 쓰는 트랜스젠더의 아픈 현실… 등. 물론 대다수 대학생 트랜스젠더에게, 화장실은 물론 대학은 위험한 공간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 졸이며 대학교 등 학교 화장실을 쓰거나 저처럼 ’끊기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경우 모두 그나마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합니다. 대학은 커녕 학교 문턱도 못 밟는 트랜스젠더가 허다한게 현실이고, 저도 어쨌든 대학에선 얻어터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서사는 트랜스젠더도 어떻게든, 아등바등 존재하고, 어딜 가고,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당연히 언론 기자가 찾아와 흰 색 스터디룸에서 격식을 차리고 화장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멋쩍어서라도 “네 뭐 힘들죠”라고 답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진 말아주세요. 트랜스젠더도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순간이 있고, 갑니다. 방광에 힘을 주던지, 허름한 성별 표기 없는 화장실을 찾던지, 적당히 후드티를 뒤집어쓰던지, ‘안 걸릴’ 자연스러운 복식으로 화장실을 찾던지. 어떻게든 일을 성사합니다. 이를 위해 화장실을 쓸 때마다 숨죽여야 한다는 것, 시원하게 기침 못하고 전화 못 받는 것, 소리 하나하나 신경써야 한다는 것,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걸 발견했습니다. 성기 모양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어디에 누가 들어갈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굴어야 이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누가 그것에 주목합니까. 화장실에서만 사람들이 우릴 보고 놀라고, 조롱하는게 아닌 만큼 하물며 세상을 살면서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보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나름의 지혜와 삶을 찾았겠습니까. 트랜스젠더가 불쌍한 존재,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존재로만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반기는 화장실이 없어도, 학교와 집이 없어도, 교과서와 급식이 없어도, 세상의 정말 추하고 더러운 소리가 들려도 귀기울이며 듣고, 눈치보고, 참고, 그것을 용서하고, 속으로 많은 것을 삭혀가며 어떻게든 살만한 삶, 혹은 그에 미치지 않아도 남들은 못 견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우리가 단지 실패자입니까.
화장실에서 들리는 지저분한 음성부터 크게는 이 세상에 만연한 폭력과 혐오, 부조리한 주류 질서에 의한 억압을 간과하는 것.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작은 계기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가능성보다 억압 앞에 절망으로 임하는 그것. 그것이 실패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랬습니다. 자퇴 시절 경험한 차별과 혐오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살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입학부터 맞았던 2020년 두 트랜스젠더 영웅이 경험한 큰 폭력 앞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지지부진한 변화, 국가의 무책임을 핑계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았던 시간과 트랜스젠더로 사는 시간에서 절망과 수치만을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입시경쟁은 물론 성별이분법적인 교육제도 안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와중에도, 윤석열 정권이 사회 교과서에서 우리를 지웠어도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는,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은 능청을 떨고, 눈치를 보고, 자신의 몸을 잠시나마 다른 곳에 감춰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교과서, 학교, 집 없이도 그랬습니다. 대단한 법과 제도가 아니어도, 혼자서라도 잘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가장 간절하게 찾은 그것에 응답해야 합니다. 단지 ‘곁을 함께 하는 한 명의 동료’ 말입니다. 이를 위해, 그런 이들이 서 있는 아래로부터 현장을 재건해야 한다는 전망으로 활동한 노동·정치·사람과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는 올해 2월부터 학교 밖 성소수자를 위한 검정고시 교실, 무지개교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 1~4월부터 시작될 교실 사업을 준비하며 우리 무지개교실은 우리 처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름의 ‘애매한 파티’라는 네트워킹 파티를 시작으로, 당사자 인터뷰, 사례조사, 학교 밖 성소수자 카카오톡 채팅방 운영, 오프라인 및 줌 스터디 형식의 ‘무지개자습실’ 진행, 당사자 영상 동아리 운영 등을 통해 학교 밖에 사는 퀴어가 모이고 소통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성소수자가 있다는 사실을 넘어, 성소수자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지혜와 도움을 나누고 받는, 살만한 삶을 대학 등 주류 질서에 기대지 않아도 당장 꿈꿀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에서 그랬듯이, 트랜스젠더는 물론 학교 밖에서 지내는 성소수자와 함께 학교와 학교 밖,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일상의 자리에서부터 아주 작은 계기나마 귀기울이고, 탐색하고, 그것을 파헤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겠습니다. 실패, 그리고 실패가 준 새로운 계기, 그랬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은 성공 모든 것을 함께 말하겠습니다. 무지개교실이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그러리라 기대하며, 앞으로도 오늘처럼, 실패를 말하고 실패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의 자리에 가장 먼저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을 쓰듯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겠습니다
한성 (노동·정치·사람,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안녕하세요. 노동·정치·사람과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함께 준비하는, 학교 밖 성소수자를 위한 검정고시 교실 ‘무지개교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느 날, 대학교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신 날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사랑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교수님께서 그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한성 학생, 학교 생활은 어때요? 화장실 쓰는거 힘들진 않아요?” 물론 누가 봐도 성별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저를 사려깊게 걱정하는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양심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교 남자화장실 쓰는게 힘들던 때는 처음 캠퍼스를 갔던 당일 말고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두번 자퇴하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학 다니는데 돈 아까워서라도 화장실 잘 쓰는게 맞으니까요. 저를 걱정해서일까요? 이런 마음을 갖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저를, 꼭 남학우 분들께선 아주 놀란,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랍니다. 처음엔 그 걱정이 미안해 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걱정에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긋이 쳐다봐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제 의사를 잘 알았다는 듯이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를 내시며 화답하시더랍니다. 저는 거기서 사실 보람과 재미를 많이 느낍니다.
흔히들,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벼랑 끝에 몰린 실패자,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 학교와 집과 등등의 공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화장실도 못 쓰는 트랜스젠더의 아픈 현실… 등. 물론 대다수 대학생 트랜스젠더에게, 화장실은 물론 대학은 위험한 공간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 졸이며 대학교 등 학교 화장실을 쓰거나 저처럼 ’끊기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경우 모두 그나마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합니다. 대학은 커녕 학교 문턱도 못 밟는 트랜스젠더가 허다한게 현실이고, 저도 어쨌든 대학에선 얻어터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서사는 트랜스젠더도 어떻게든, 아등바등 존재하고, 어딜 가고,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당연히 언론 기자가 찾아와 흰 색 스터디룸에서 격식을 차리고 화장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멋쩍어서라도 “네 뭐 힘들죠”라고 답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진 말아주세요. 트랜스젠더도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순간이 있고, 갑니다. 방광에 힘을 주던지, 허름한 성별 표기 없는 화장실을 찾던지, 적당히 후드티를 뒤집어쓰던지, ‘안 걸릴’ 자연스러운 복식으로 화장실을 찾던지. 어떻게든 일을 성사합니다. 이를 위해 화장실을 쓸 때마다 숨죽여야 한다는 것, 시원하게 기침 못하고 전화 못 받는 것, 소리 하나하나 신경써야 한다는 것,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걸 발견했습니다. 성기 모양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어디에 누가 들어갈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굴어야 이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누가 그것에 주목합니까. 화장실에서만 사람들이 우릴 보고 놀라고, 조롱하는게 아닌 만큼 하물며 세상을 살면서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보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나름의 지혜와 삶을 찾았겠습니까. 트랜스젠더가 불쌍한 존재,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존재로만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반기는 화장실이 없어도, 학교와 집이 없어도, 교과서와 급식이 없어도, 세상의 정말 추하고 더러운 소리가 들려도 귀기울이며 듣고, 눈치보고, 참고, 그것을 용서하고, 속으로 많은 것을 삭혀가며 어떻게든 살만한 삶, 혹은 그에 미치지 않아도 남들은 못 견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우리가 단지 실패자입니까.
화장실에서 들리는 지저분한 음성부터 크게는 이 세상에 만연한 폭력과 혐오, 부조리한 주류 질서에 의한 억압을 간과하는 것.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작은 계기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가능성보다 억압 앞에 절망으로 임하는 그것. 그것이 실패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랬습니다. 자퇴 시절 경험한 차별과 혐오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살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입학부터 맞았던 2020년 두 트랜스젠더 영웅이 경험한 큰 폭력 앞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지지부진한 변화, 국가의 무책임을 핑계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았던 시간과 트랜스젠더로 사는 시간에서 절망과 수치만을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입시경쟁은 물론 성별이분법적인 교육제도 안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와중에도, 윤석열 정권이 사회 교과서에서 우리를 지웠어도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는,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은 능청을 떨고, 눈치를 보고, 자신의 몸을 잠시나마 다른 곳에 감춰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교과서, 학교, 집 없이도 그랬습니다. 대단한 법과 제도가 아니어도, 혼자서라도 잘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가장 간절하게 찾은 그것에 응답해야 합니다. 단지 ‘곁을 함께 하는 한 명의 동료’ 말입니다. 이를 위해, 그런 이들이 서 있는 아래로부터 현장을 재건해야 한다는 전망으로 활동한 노동·정치·사람과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는 올해 2월부터 학교 밖 성소수자를 위한 검정고시 교실, 무지개교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 1~4월부터 시작될 교실 사업을 준비하며 우리 무지개교실은 우리 처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름의 ‘애매한 파티’라는 네트워킹 파티를 시작으로, 당사자 인터뷰, 사례조사, 학교 밖 성소수자 카카오톡 채팅방 운영, 오프라인 및 줌 스터디 형식의 ‘무지개자습실’ 진행, 당사자 영상 동아리 운영 등을 통해 학교 밖에 사는 퀴어가 모이고 소통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성소수자가 있다는 사실을 넘어, 성소수자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지혜와 도움을 나누고 받는, 살만한 삶을 대학 등 주류 질서에 기대지 않아도 당장 꿈꿀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에서 그랬듯이, 트랜스젠더는 물론 학교 밖에서 지내는 성소수자와 함께 학교와 학교 밖,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일상의 자리에서부터 아주 작은 계기나마 귀기울이고, 탐색하고, 그것을 파헤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겠습니다. 실패, 그리고 실패가 준 새로운 계기, 그랬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은 성공 모든 것을 함께 말하겠습니다. 무지개교실이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그러리라 기대하며, 앞으로도 오늘처럼, 실패를 말하고 실패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의 자리에 가장 먼저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